문득.. 내가 취준생이 된 후, 나에 대해 너무 소홀해 진 듯 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 인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해답은 없는 걸까?... 몇일 전 면접도 보고, 오늘은 토익 스피킹도 보고, 3월이 되고 정말 하루 하루 바쁘게 달려가는 나.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이렇게 지난 무한 도전에서 방영된 말하는 대로 제작 과정을 포스팅해 본다. 

[사진 출처]_ MBC 무한 도전 서해안 가요제 특집 중...









정말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인생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취업 준비생들에게 화이팅! 하고 응원하며,

말하는 대로... 노래도 같이 링크해본다. Hyun


국민 MC 유재석의 무명시절을 자신이 가진 열정으로 이겨냈던 이야기를 노래로 옮긴 ' 말하는 대로 ...'

서울과는 멀리 있는 나지만, 20대가 되고 나서 서울은 정말 많이 가 본 곳이다. 활기가 넘치고 볼 것도, 먹을 것도, 뭔가 기를 받고 올 수 있는, 나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금 일어 날 수 있도록 해준 서울.

작년 다큐 3일에서 본 36.5도시의 광장 시장 편을 감명 깊게 보고 반드시 가봐야지... 했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안 맞아 서울에 가서도 광장시장은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면접을 보고, 첫 장소를 광장시장으로 잡고, 빈대떡을 먹으리라는 목표를 설정하여, 같이온 친구와 종로 5가 역에 다다랐다.

먹자 골목으로 들어 갔고, 유난히 크게 크게 적힌 빈대떡 간판들..

바로 내가 원하던 그 곳이 맞았다. 가운데 분식이나 먹거리들이 널려 있고, 뭔가 북적 북적되는 시장의 사람 냄새.




광장시장 내의 조명 조차도 따뜻한 색이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아 앉아도 뒤에 지나가는 사람때문에 치이고 부딪히지만, 불평 불만 없이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하며, 이것도 다 시장이니깐, 이라는 마음으로 너그러워 보였다.


모두 배고픔을 채우러 광장시장을 찾아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도 면접을 끝낸 터라 긴장도 풀려 배가 너무 고파 한자리를 차지했다.

우리가 간 곳은 전북 부안이 고향인 할머니네, 부안네라는 곳이다. 아니 ! 할머니 ~ 저저 다큐 3일에서 뵈었어요 ㅎㅎㅎ

할머니께서두 아 봤어 ! ㅎㅎ 제가 사진촬영을 요청해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자연스레 포즈를 취하셨다.

멋쟁이 할머님 ㅎㅎ 지나가시는 손님들을 위해 소리치며 할머님의 음식을 홍보하시고, 아주 시크하셨다. 서비스도 아주 대만족. 배고픈 대학생 2명이 먹는데, 접시가 비워지지가 않았다. 비우면 또 즉석에서 넣어주시고, 생전 처음 먹어보는 허파전, 그리구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빈대떡 ㅎㅎ 빈대떡의 두께가 무려 ~ 정말 두꺼웠다 ㅎㅎ 입에서 사르르 녹는게..아후 침이..

사진 촬영에 포즈를 취하신 모습!

내가 즐겨보는 다큐 3일에서의 할머니 사진도 함께 올려본다. 처음 얼굴을 뵈었을 때, 정말 너무 나한테는 친숙해서 인사할뻔 했다 ㅎㅎ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ㅎㅎ 할머님 덕분에 광장시장의 다른 음식은.. 다음 기회에 ㅎㅎㅎ 그래두 다음에 찾아두 할머님 가게에서 빈대떡 꼭 먹을게요 ㅎㅎ 다음엔 막걸리도 한잔 들이키며 


배가 너무 불러 소화도 시킬 겸 주변을 걸었다. 광장시장은 먹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옷, 원단 등 다양한 물품을 취급햇다.


일바지 사이에는 김남주 바지라는 명패가 보였고, 원단 파는 곳으로 올라갔더니 할머니께서 뭐 찾어~ 원단? 아 ! 구경 좀 할려구요. 구경해두 되죠? 라고 답했지만 할머니께서는 뭐 ? 구제? 아니요 구경이요 ㅎㅎ. 뭐 구제?? 구제는 저기 은행 뒤에 있어 ㅎㅎ. 마치 개그 콘서트의 한장면 처럼 한바탕의 실랑이 끝에.. 네 할머니 구제 보러 갈게요 ㅎㅎ


할머니의 마지막 웃음은 ㅎㅎ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인자하셔서 우리들은 구제파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구제 파는 곳은 동대문 시장 만큼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꽤 컸다. 안랩 기자단 동생이 추천해준 곳이라 한번 보고 싶었다. 둘러보니 청자켓이 눈에 많이 띄었다. 청자켓이 유행인가 보다. 하지만 지나 가는데, 상점 형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놓치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우리를 불렀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치 않아 우리들은 재빨리 나오고 말았다. 


광장시장은 ㅎㅎ 뭐랄까? 사람 냄새도 나고 음... 안보이는 전쟁터? 라고 해야할 것 같다. 젊은 사람부터 할머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장사라는 전쟁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 만의 마케팅으로 광장 시장을 밝히고 있었다. Hyun


우리는 사실 아직도 배가 불러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은 다음 포스팅으로 돌리겠다. ㅎㅎ


  며칠 전 대형 카드 3사의 개인 정보 유출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국민들의 정보가 거의 대부분 해킹 당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렇게 요즘은 정보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보안이 사회적 이슈인 만큼 보안에서 빠질 수 없는,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정부 기관의 보안을 위해 모의로 해킹을 하고 방어책을 마련하게 해주는 화이트해커, 심준보를 만나 보았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여 대학가의 한 술집에서 그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해커이자 창업가

^0^  ‘블랙펄 시큐리티’라는 회사를 만드셨는데 어떤 회사인지 소개 부탁드릴게요.

  의뢰가 들어온 기업이나 사건의 취약점 분석과 보안 관리를 주 업무로 합니다. 직원은 총 3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저의 연봉에 개인적으로 의뢰받은 비용을 받는 형식으로 운영됩니다. 즉, 자유롭고 성과제 형식으로 운영되기에 업무 능률은 연봉 급여 형식보다 높습니다. 또한 출퇴근 시간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거래중인 프로젝트의 해당 기간을 엄수하여 처리하면 됩니다. 계약을 마무리 짓거나 업무가 없을 때에는 휴식을 취합니다. 채용은 기존에 실력 있는 해킹 대회 수상자와 해킹 실력자들에 관심을 가지며, 대학교 졸업 후 어느 정도의 경력이 쌓였다고 생각되면 스카우트 제의를 합니다.

^0^  창업하면서 불안 요소들 중 어떤 것들이 있나요?

  회사가 개인의 이름을 보고, 의뢰가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도 현재와 같은 소득이 유지될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도 시중에 출판되는 해킹관련 논문과 서적은 계속 읽는 중이며, 노력을 해야 합니다.

^0^  직장을 다니시다가 나오신 걸로 아는데 직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돈을 벌 수 없는 일이라면, 돈은 다른 일로 벌고서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을 바라는 것은 드라마나 소설의 영향이라고 본다. 다만, 돈을 버는 일이 싫어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네요.

^0^  프리랜서로서 회사가 있는데, 예전 직장이 좋았던 점이 있나요?

  네, 물론 있어요. 큰 회사일수록 그 회사에서만 볼 수 있는 정보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지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보안 일을 맡기려면 제약이 있다. 법으로 정해진 자격 요건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회사가 좋은 점이 있어요.


해커가 해킹에 대해

^0^  해커라는 직업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선 해커는 연습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실제 보안실태를 파악해가면서 해킹을 연습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실제 적용된 기업이나 기관을 목표로 할 수가 없죠. 즉, 해킹은 연습할 곳이 마땅하지가 않습니다. 둘째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점 중에 하나이다.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없기에 보안의 틀을 깨는 공격성향의 오펜시브 해커를 따라가기는 힘듭니다. 열악한 환경과 더불어 급여 수준을 향상시킨다면 최고의 직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킹 사고가 일어난 기업에서 보안담당자들을 모두 교체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해킹과 보안은 실전으로 배우는 것이기 최적의 교육이기에 기업과 기관의 보안이 뚫렸다고 해서 보안담당자를 교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존의 취약점에 대해 교육을 받은 담당자들이 직접 경험한 새로운 취약점을 익힘으로써 담당기업의 보안 수준은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0^  최고의 해커란 어떤 것인가요?

  최고의 해커를 뽑으라면 몇몇 사람을 꼽습니다. 기준은 보통 해커들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졌거나 예상하기 쉬운 취약점들을 찾는데, 그 중에서 모두가 봐도 탁월한 취약점을 발견하는 사람이 실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작곡 세계에서 최고의 작곡들은 후세에 가서도 최고라고 회자되는 것과 같죠. 그리고 이러한 실력자들도 아카데미 시상식과 같이 해커들 간의 취약점 시상식이 열립니다. 저도 누구에나 인정받을 수 있는, 후세에도 제 이름을 기억시킬 탁월한 취약점을 발견하여 이름을 올리고 싶습니다.

^0^  보안 교육은 주기적으로 하시나요?

  주기적으로 교육을 계속 하고 있는데요, BOB, 영재 교육원 등에서 기업인들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성균관대, 전북대 등 6여개의 대학과 기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에서는 주로 난이도가 높은 과제와 프로젝트에 대해 학생들에게 접근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다.

^0^  심준보에게 해킹이란?

  해킹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파는 것 입니다. 만약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에 대해 집중하고 보다 깊이 아는 것도 해킹입니다. 너무 모호한가요? 솔직히 저는 너무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고 해왔던 것이기에 해킹의 의미는 크게 없습니다. 사람이 숨 쉬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인생에 필수적인 일부라고 생각해요.

^0^  보안새내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컴퓨터 안의 세상에 갇히지 마세요.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주인공은 교내에 원하는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을 개발합니다. 사생활 보호 원칙과 교내 법규에 따르면 그러한 학생 찾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불법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현재의 페이스북이 되었지요? 저는 이와 같이 틀을 깨는 사고방식이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보안전문가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삶의 틀을 깨고, 열린 사고의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옆집 형 같은, 인간미 넘치는

^0^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이 되지 않을 경우, 졸업을 연기하거나, 휴학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 학부생으로 계속 재학 중이신데, 어떠한 이유에서 졸업을 하지 않으시고, 학부생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보안 및 해킹 분야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는 좋은 학교, 꼭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이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양한 출발점이 존재해야 자라나는 후배 입장에서도 많은 롤 모델들을 탄생하는 것이겠죠. 저도 1세대 해커들이 만들어 놓은 기반으로 해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죠. 1세대 해커들이 저의 롤 모델이기도 했어요.

^0^  요즘 학과와 남녀 구분 없이 대학생은 스펙에 치중하여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펙은 자신의 강점을 어필하지 못하여 선택하는 최저 취업 기준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강점이 있다면 남들과의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고, 스펙이 없어도 취업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활에서는 그러한 강점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0^  저 같은 경우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자는 생활의 신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가치관을 어떻게 정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해킹이라는 분야는 자신의 사고의 틀을 깨야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스스로의 틀을 깨고, 의견을 묻는 자리를 가집니다. 항상 틀에 대해서 경계를 하는데요, 자신의 행동에 패턴이 생기게 되어 점차 틀이 사고를 억제하게 만들 것입니다. 따라서 계획적으로 생활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스스로를 방목하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의뢰받은 업무의 결과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보기 좋게 포장해달라고 하는 경우는 과감하게 거래를 포기하고, 계약을 파기합니다.

^0^  지금껏 인터뷰를 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긍정적인 생각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이것도 해킹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해킹은 99% 실패하고 1% 성공한다는 말이 있어요. 99% 실패해서 그래요. 그래서 항상 실패하는 것에 익숙해요. 이렇게 했는데 안되네. 다르게 해볼까?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죠. 사실 오늘도 일할 때, 실패한 것들이 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도전해봐야죠.

^0^  아내분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대학교에서 만난 같은 학과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저는 졸업반이었고, 아내는 신입생이었어요. 제가 그 당시 학생회였는데, 아내가 면접을 보러 왔었고, 면접 지도를 공교롭게 제가 하게 되었어요. 그것이 첫 만남이었고 8년 반 동안 연애를 한 뒤, 작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0^  대학생인 제가 최근 제일 많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인 내가 과연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놀 때, 뭐하고 놀아요? 그 일을 하면서 돈을 엄청 많이 벌 수 있다면, 그 일을 할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일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에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하는 것 좋아했고, 프로그램을 짜는 것을 좋아했어요. 물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 지겹고 하기 싫고, 슬럼프가 올 때도 있어요. 그런데 자기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제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자기 일과 사생활을 구분 짓는 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즘 학생들이 강박관념에 쌓여있는 것이 있어요.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가? 하고 싶은 일을 돈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돈을 벌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을 만들고 내가 하고 싶은 첫 번째는 남는 시간에 하면 되겠죠.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저도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했어요. 물리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고, 수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고,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되고 싶기도 했어요. 하고 싶은 일들을 취미로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 일로 돈을 벌지는 않죠. 그래도 저는 만족하면서 행복해요.

^0^  좋아하는 일을 해도 슬럼프가 있겠죠? 혹시 슬럼프가 있었다면,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사실 슬럼프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슬럼프 극복 노하우라고 하면은 일로부터 멀리 벗어나 아예 놀아버린다. 다시 컴퓨터가 하고 싶어질 때까지 놓아버립니다. 길게는 6개월 정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다시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나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

^0^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요, 여기저기서 해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전 세계에서 한국의 심준보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그러한 입지와 명성으로 보안학교를 설립하여 보안 인력을 양성하여 함께 가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는 대한민국의 해커라면 누구든지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해커들의 카페를 창업 하고 싶네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길은 언제나 밝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를 결정짓는 것은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언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사고방식과 즐기면서 노력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 냄새 나는 창업자이자 화이트해커이자 보안 교육자이자 해커 2세대이자 기자 둘의 멘토가 된 심준보. 웃음 띤 얼굴로 위의 블랙펄이 앞으로 나아가듯, 그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최고의 해커로 우뚝 선 미래를 기대해본다. Ahn



대학생기자 김재현 / 충남대 전자공학과


Positive thinking! 

항상 무슨일이든 긍정적으로!

할 수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자


[출처]_ 안랩 사보 ' 보안세상'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복잡한 서울에도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과거의 사진첩을 보는듯한 아련함을 주는 북촌 한옥마을을 찾았다.



   북촌은 창덕궁, 경복궁, 종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서울의 대표적 주거지였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인 만큼 문화재와 유적이 있는 곳이다.





   한옥마을을 걷는 동안, 과거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했다. 시끌벅적한 도시와 반대로 고요하고 편안함을 주며 특히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래 되어 보이는 기와집이 있는가 하면, 기와집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조화롭게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북촌 한옥마을 꼭대기로 올라가면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의 모습과 한옥마을의 모습이 어우러져 멋진 경치를 보여준다. 계단을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삼청동의 모습은 고요해 보인다. 북촌 거리는 70, 80년대의 모습을 한 건물들과 현대식 카페와 공방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안국역에서 2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주민사랑방이 있다. 그곳에서 관광지도를 얻으면 북촌 한옥마을의 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도에 소개되어 있는 북촌 한옥 마을의 8경외에 안랩 기자 6인이 각각 다른 색깔로 북촌의 숨은 명소 6경을 선정해보았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모습을 가진 북촌 한옥 마을을 소개한다. 


< 제 1경, 돌담 속 북악산 >_ 이혜림 기자

 


 

“북악산과 눈높이를 맞추고 

                           굽어보는 돌담 사이의 풍경”

좌우로 쌓인 돌담은 시선을 앞으로 향하게 한다. 시선은 내리막길을 따라가고 이내 가지각색의 한옥 지붕과 함께 그 너머를 감싸는 북악산이 보인다. 돌담은 액자가 된 듯, 눈앞의 풍경을 가운데로 몰아 견고하게 받친다. 바위가 두드러지고 경사가 완만한 북악산의 모습은 차가운 분위기를 준다. 이런 북악산의 느낌과 한옥이 주는 따뜻한 분위기가 대비를 이루며 색다른 조화를 만들어 낸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좁은 비탈길이지만 골목 사이사이를 훑어보는 여행자에게는 확실히 눈에 밟힐 풍경이다. 산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니 산이 더 높아지고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리막길에서 내려가지 않고 산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감상 포인트이다. 

< 제 2경, 창덕궁 가기 10미터 전 >_ 윤현정 기자



 

“시각의 차이, 

             북촌에서 바라 본 창덕궁의 새로운 모습”

 북촌언덕을 오르고 나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듯 창덕궁의 기와들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창덕궁은 전쟁 등으로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 할 경우를 대비하여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그래서인지 정문인 돈화문을 통하여 창덕궁을 바라보면, 왕실의 우아함과 건축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평온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북촌에서 창덕궁을 바라보면, 앞서 느꼈던 아름다움의 뒷면에 있는 애틋한 느낌이 든다. 북촌에서 보이는 창덕궁은 정식 입구가 아니기 때문에 관료들의 비밀스럽고도 슬픈 사연을 많이 담고 있다. 한 가지 시각에서 창덕궁의 화려한 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북촌에서 느낀 것처럼 창덕궁의 색다른 면을 보게 될 것이다.

< 제3경, 과거 속에서 본 현재 >_ 채유빈 기자

 


 



“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떠한가? 뒤돌아보며, 

                            과거 북촌 한옥 마을에서.”

 북촌한옥마을을 쭉 걸어가다 보니 제법 높은 곳 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내려가는 길을 찾다가 발견한 이곳은 길을 따라 줄지어진 한옥마을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시선을 가까운 데부터 먼 곳까지 이어가면 저 멀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 내가 서있는 북촌 한옥마을은 과거, 저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은 현재라고 느껴졌다. 과거에 시선에서 저 현재의 빌딩들은 화려하고 높이 솟아있지만, 더 정감 있고 더 있고 싶게 만드는 곳은 바로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북촌이었다. 북촌 한옥마을은 복잡한 도시 속에서 옛 모습과 자연을 간직하고 있어 현대인들이 잠시 쉼표를 찍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 제4경, 북촌의 반전매력 중앙고등학교 >_ 임지연 기자


 


 

“ 음식도 퓨전 음식이 있듯이

                              북촌에도 퓨전이 녹아있다.”

북촌 안에 있는 한옥마을을 구경하다보면,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고등학교를 발견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이 느껴지는 한옥과 반대로 이국적인 건축물로 북촌의 반전매력을 주는 느낌이 좋아 안랩 기자단의 4번째 추천 장소로 정했다. 중앙고는 개교한지 100년이 넘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민족교육의 나아갈 바를 제시한 요람으로서, 수많은 민족 지도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처음 중앙고에 들어왔을 때에는 마치 대학교 캠퍼스 안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반적인 고등학교와 달리 고딕 성당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이용시간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주중에는 개방하지 않고 주말에만 개방한다고 하니 북촌한옥마을을 찾게 된다면 중앙고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 제5경. 북촌, 기와에 빠지다. >_ 백종수 기자

          


 “북촌의 언덕은 조금 오르다 잠시 뒤를 돌아보자.”

 기와가 구름에 닿을 듯, 새가 쉬어갈 수 있듯 북촌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기와가 빼곡하다. 그냥 골목을 걸어 다니고 주변 상가들을 지나 설 때는 잘 몰랐지만,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비로소 내가 한옥 마을에 왔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준다. 북촌 한옥 마을은 예로부터 북촌이라 하여 양반 동네로 알려졌다. 이곳의 주택은 모두 조선 시대의 기와집으로서 상류층의 구조 형태를 간직하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원래 북촌 한옥 마을에는 솟을 대문이 있는 큰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밖에 없었다. 이 후에 일제 말기와 6.25 수복 직후 지금의 상태로 늘어나면서 지금의 아름다운 북촌 한옥 마을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 제6경, 북촌 한옥마을 돌로 수놓다. >_ 김재현 기자


 


  

“ 각기 다르게 생긴 돌 하나하나로 

                            북촌을 하나의 마을로 이루다.”

  내가 선정한 제6경은 북촌 한옥 마을 골목길에서 북악산이 보이는 곳이다. 원래 산이었던 곳인지 언덕이 참 많다.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좋은 경치를 보기 위해서는 오르고 또 올라야한다. 몇 개의 언덕을 올라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고즈넉한 옛 양반이 살 것 같은 집 대문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돌로 가득한 이 공간을 주시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벽을 쌓을 때, 돌을 차례차례 한 개씩, 쌓아 올라가서 비로소 꼭대기까지 완성이 된다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과연 오른쪽 벽의 돌이 왼쪽 벽의 돌보다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켜왔을까? ‘이 돌들은 마을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을 모두 보았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이 마을을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북악산에서 서울을 지키며 내려다보는 바위들만큼 오래오래 남기를 바라면서, 촘촘히 돌로 수놓은 듯, 돌담이 많은 북촌 한옥마을을 조원들과 함께 걸었다.


  북촌 한옥마을에는 비탈길이 꽤 많다. 북촌을 돌아보며 숨차지 않을 방법은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천천히 보는 것이다. 북촌에서 찍은 사진을 한데 모아보며 가장 먼저 든 느낌은 ‘따뜻함’이다. 한옥들이 주는 선과 색감 때문일 수도, 한옥으로부터 느끼는 한국인의 정서일 수도 있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빛은 따뜻했던 날에 둘러본 북촌 마을은, 꽃이 피기도 전에 봄처럼 따뜻한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시에서는 북촌 한옥마을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지점 8곳을 지정하여 북촌 8경으로 선정하고 포토 스팟을 설치하였다. 이 북촌 8경의 포토 스팟을 하나씩 찾아가며 풍경을 즐겨보는 것도 의미 있는 탐방이 될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맘에 쏙 드는 1경을 더하여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둘러본다면 더 기억에 남는 나만의 북촌이야기로 쓰여 질 것이다. Ahn



대학생 기자 / 세종대학교 이혜림

대학생 기자 / 동덕여자대학교 윤현정

대학생 기자 / 중앙대학교 채유빈

대학생 기자 / 덕성여자대학교 임지연

대학생 기자 / 동국대학교 백종수

대학생 기자 / 충남대학교 김재현


[출처]_ 안랩 사보 '보안 세상'

가 내린다는 소식에 가을을 마지막으로 느끼고 싶어, 가을하면 은행나무. 은행나무하면 덕수궁 돌담길.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실 덕수궁 돌담길을 몇 번 가보았지만 가을에 간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이번에 꼭 가보고 싶었다. 몸은 이미 지하철 속에서 시청역을 향하고 있다.

청역에 도착하여 처음 나를 반긴 것은 시청 광장에 써져 있는 글귀였다. ‘괜찮아. 바람이 싸늘해도 사람 따스하니’. 춥고 힘든 세상이라도 따뜻한 정이 있으니 괜찮다는 위로의 말로 들렸다. 한참이나 그 글귀를 보며, 시청 앞에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이 앞만 바라보고 조급해하는 나와 닮은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청을 뒤로 하고, 대한문 앞으로 걸어 왔다. 덕수궁 안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서 길게 줄서있었다. 덕수궁 안도 좋지만 덕수궁 돌담길과 그냥 지나치기 쉬운 덕수궁 둘레를 걸어보기 위해 대한문 옆으로 발을 옮겼다.

을의 명소답게 덕수궁 돌담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가을의 덕수궁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끼리 저마다 덕수궁 돌담길의 매력에 빠져 평소에 걸음걸이 보다는 훨씬 느리게 걷고 있었다. 나 또한 느리게 걸으며 덕수궁 돌담길 이곳, 저곳 빠짐없이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는 주변 명소나 대표하는 것들이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옛 덕수궁 지도와 대한문, 구세군 교회 그리고 은행잎까지 덕수궁 길의 가이드 블록이 덕수궁 돌담길을 꾸며주고 있다.

날은 마침 이중섭 화가의 그림이 돌담에 벽에 기대어 거리의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멋진 그림과 그림의 뒤에 돌담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돌담길을 걷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볼거리가 많았다. 돌담길 풍경 그리고 그림들. 걷는 내내 눈은 행복해하고 있다. 

수궁 뒷문으로 걸어가니 오르막길로 돌담의 기와가 계단식으로 길의 높이를 어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돌담 안으로 쭉 뻗어있는 은행나무들이 이 자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왔는지 알 수 있었다. 돌담길이 끝나고 덕수궁 돌담길 가이드 블록에 그려져 있던 구세군이라 쓰여 있는 서울 제일 교회를 보며 곧 다가올 구세군의 종소리가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빨간 자선냄비가 올해에도 따뜻한 정으로 가득 차길 바라며 덕수궁 둘레를 모두 걸었다.

딩 숲속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 때로는 느리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아닌지? 시청 앞 글귀 ‘괜찮아, 바람이 싸늘해도 사람이 따스하니.’처럼. 가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올해 겨울은 얼마나 더 추울지는 모르겠지만, 힘들고 고된 시련들을 따뜻한 정으로 녹이며 이겨내면 어떨까? 하며, 나는 가을을 품은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중에서 Ahn



대학생기자 김재현 / 충남대 전자공학과

Positive thinking! 

항상 무슨일이든 긍정적으로!

할 수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자

[출처] 이문세-광화문연가|작성자 샘내


[출처]_ 안랩 사보 ' 보안 세상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교과서였던 것 같다. 그러다 얼마 전 여름방학 8월이 되던 때, 문득 보고 싶어져 찾아보았다. 한번 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8월의 크리스마스’는 90년대 첫사랑의 추억으로 대표되는 로맨스 영화에서 사진의 매력에 대해 알려주는 영화로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사진의 새로운 매력에 들어가 본다. 

영화 속 정원(한석규)은 초원 사진관이라는 사진관 주인이자 사진사이다. 정원의 사진관에는 여러 인생들이 거쳐 간다. 취업 면접용 사진을 찍으러 온 ‘젊은 취업 준비생’, 주차단속용 사진을 맡기러 온, 지금은 길에서 찾아보기 힘든 ‘주차 단속 요원 다림(심은하)’

그리고 자신의 반에서 짝사랑하고 있는 여자 아이의 얼굴을 확대해 달라는 ‘초등학생들’, 지금은 모두들 늙어버린 우정을 다룬 ‘동창생들과의 사진’, 할머니를 포함한 시끌벅적하고도 따뜻한 ‘대가족의 가족사진’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 모르는 인생을 정리하시는 ‘할머니의 영정사진’, 복싱이라는 상대선수를 위협적이게 해줄, 복싱 포스터지에 실릴 ‘복싱선수 사진’.

마지막으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주인공 정원(한석규)의 ‘영정사진’까지 초원 사진관에는 다양하게 저마다의 목적으로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가진 로맨스와 관련된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도 사진이 있었다. 정원(한석규)이 병원에 있을 동안과 정원(한석규)이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다림(심은하)과 소통을 할 수 없었지만 초원 사진관의 다림(심은하)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본 다림(심은하)은 정원(한석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사진은 옛, 그 당시를 추억하게 하고 그 때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남기는 줄로만 알았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사진이라는 것이 새롭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위에 나열한 것 외에도 사진은 여러 사람들에게 제각각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방학 중, 집에서 가족이 둘러 앉아 옛 사진들을 모아둔 사진첩들을 찾아보는데 모두들 ‘이럴 때가 있었지~’ 하면서 얼굴에는 추억에 가득 찬 미소가 번졌다. 젊었을 때, 왠지 촌스러운 부모님의 모습과 나의 어릴적 사진들이 큰 웃음을 터트리게 하였다. 사진을 보며 그 때를 떠올리며, 당시에 있었던 얘기를 꺼내면 코믹, 액션, 멜로, 코믹 영화가 완성되었다. 가족 여행지 마다 찍은 사진을 보며 아버지께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아빠, 우린 부자인 것 같아요. 울릉도에도, 강원도에도, 서울에도, 대전에도, 집이 있잖아요.” 여행지마다 숙소가 곧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던 순수함을 사진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사진은 우리 인생에 가장 소중한 재산인 것 같다.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즐겨하던 나는 이런 소중한 재산을 모으기 위해 카메라를 하나 구입하여 여기 저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다.

사진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인생의 최고 또는 소소한 일상의 순간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그럼 사진을 찍어보세요.’라고 당당히 말해주고 싶다.

사진을 찍을 땐, 사진 찍는 사람도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진 찍히는 사람도 모두 웃고 있다. 사진은 모두가 웃을 수있는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 전도사이다. Ahn




대학생기자 김재현 / 충남대 전자공학과


Positive thinking! 

항상 무슨일이든 긍정적으로!

할 수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자



[출처]_ 안랩 사보 ' 보안 세상 '

아침이면 입김에 두 손이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는 겨울이 일찍 찾아오고 있다. 이 추운 겨울이 오기 전,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운 경주의 길'을 하루 빨리 소개하고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경주 하면 불국사, 석굴암 등 세계문화유산이 많은 곳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수학여행으로 거쳐 갔을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문화재와 어우러진 자연을 품고 있는 길을 조명해보려 한다.

대릉원 옆 돌담길은 서울 덕수궁 옆 돌담길과 달리 아담한 크기이다. 아담한 크기에 비해 길이는 길다. 돌담길의 가로수는 벚꽃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봄에는 벚꽃이 피어 돌담길을 흰색으로 물들여 주고,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에는 땀을 식혀줄 그늘이 되어 주고, 가을에는 빨갛게 옷을 갈아입고, 겨울엔 가지만이 남아 돌담을 지키는 병사들이 열병해있는 것같이 돌담길의 배경에 마법 주문을 걸어 놓는다. 긴 돌담길 뒤엔 무엇이 있을 지 궁금하게 길 초입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길이 휘어져 꼭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마침내 돌담길 끝에 다다랐을 땐 또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는 산을 배경으로 큰 릉이, 왼쪽으로는 멀리 첨성대가 보인다. 대릉원에서 안압지 가는 길은 자연 속의 문화재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여러 가지색의 꽃들이 문화재를 감싸면서 심어져 있다. 그 길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꽃들이 향기를 뽐내고 있어, 하나하나 음미해가며 천천히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중간쯤 걸어오면 양쪽으로 코스모스가 나의 허리보다 약간 높게 심어져 있다. 코스모스 꽃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내가 없어진 듯 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엄청난 양의 코스모스들이 반기고 있어 코스모스 길 사이로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봄엔 코스모스 대신 유채꽃들이 심어져 있어 벌써 봄이 기다려진다. 코스모스 사이에 푸른색으로 덮인 터널이 나의 발걸음을 옆길로 새도록 한다. 그 터널엔 기다란 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녹색 비가 내리는 듯 박들이 피로에 지친 눈을 맑게 해준다.

길 주변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느리게 여유롭게 자연을 느끼면서 걸어 갈 수 있다. 잠시나마 쉼을 마치고 다시 길을 걸으려는데 코스모스 길 사이로 첨성대가 보인다. 마치 첨성대로 가는 길을 안내하듯 큰 길도 아니고 두 명에서 걸을 정도의 크기로 양 쪽은 키 큰 코스모스들이 소개하고 있다.

코스모스 길을 뒤로 한 채 다음으로 만난 건 무언가 동양적인 미를 가진 연꽃들을 만날 수 있다. 연꽃은 활짝 핀 것, 움츠리고 있는 것 등 여러 형상을 띄고 있는데, 움츠린 것은 다보여주지 않는 절제미를 느낄 수 있다. 연잎은 연꽃들을 받쳐주고 있는 그릇 같아 보인다. 물병에 물을 연잎에 살짝 떨어뜨려보니 물이 방울방울 맺히는 게 왜 드라마나 만화를 보면 연잎으로 우산을 이용했는지 알게 해준다.

나중에 비가 쏟아지면 비를 피하러 연잎 밑에 꼭 와야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면서 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의 첨성대도 참 멋지다. 여러 각도에서 보는 첨성대와 그 뒤의 배경이 달라져 방금 전에 본 첨성대가 맞나 할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가진 것 같다.

 

다음으로 소개할 경주의 아름다운 길은 보문 관광단지라는 곳으로 버스로 15분 정도 이동한다. 지금 봄은 아니지만 가로수들이 모두 벚꽃나무이기에 문화재로 가득한 경주 둘레를 벚꽃나무가 안내하는 것 같다. 이전에 첨성대를 코스모스와 많은 꽃들이 안내하듯이. 경주의 슬로건 ‘beautiful’이 잘 어울리듯 경주는 아름다운 꽃들과 옛 유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냥 시내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는 것이지만 ‘두 가지의 조화를 볼 수 있는 곳은 경주뿐이지 않을 까?’ 생각하며 어느새 보문 관광단지에 다다랐다. 보문단지 초입 부분에 내려 오른쪽으로 보문호수를 끼고 길 양쪽으로는 어김없이 벚나무들이 끝없이 나열되어있다. 호수에는 하늘이 거울을 보듯 반사되어 도화지에 수채화를 그려놓은 것 같다. 이렇게 보문 호수는 경주의 미술관이 되었다. 길을 걸으며 감상할 수 있고, 시원한 공기도 마실 수 있어 시멘트 속 미술관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드디어 벚꽃나무는 작별을 하고 버드나무가 어서 오라고 축 늘어지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창가의 커튼처럼 나무 밑을 걸을 땐 커튼을 넘기면서 걷게 한다.

이렇게 경주의 아름다운 길은 저마다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일상에 지치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사진 한 장의 추억을 남기러 카메라를 챙겨 마음 맞는 이와 함께 경주의 아름다운 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 오늘 걸어온 길 : 대릉원 옆 돌담길 - 첨성대 둘레길 - 버스타고 보문단지 선덕여왕 공원 하차 - 보문호수 둘레길 - 오리배 선착장 Ahn



대학생기자 김재현 / 충남대 전자공학과


Positive thinking! 

항상 무슨일이든 긍정적으로!

할 수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자

 

[출처]_ 안랩 사보 ' 보안 세상 '

공기가 차가워지고 가로수 잎이 울긋불긋 변해가는 계절이다. 낙엽이 수북한 가을에는 왠지 통기타 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거리에 통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 그 곳이 바로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이다. 

김광석 거리 초입에 김광석이 통기타를 연주하는 동상이 앉아 있다.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옆에 앉아본다. 나도 잠시 앉았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 김광석이 누구인지 소개하는 푯말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서 자유당 정권 시절 교원노조 사태로 교단을 떠났던 전직교사 아버지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5살 때인 68년 서울로 올라갔다. 1964년 김민기의 ‘개똥이’ 음반에 참여를 비롯하여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등을 거쳐 1988년 동물원에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1989년 솔로로 독립하여 총 4장의 정규 음반을 비롯해 다시 부르기 1, 2집 등을 선보인다. ‘거리에서’,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등 애잔하면서도 서정적인 가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한국 모던 포크의 계승자로 각광받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던 중 1996년 1월 6일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거리를 걷다보면 김광석의 사진들이 벽에 실려 있다. 벽화 속 노래하는 김광석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인다. 김광석은 노래도 노랫말도 심지어 노래 부를 때 모습도 마음이 울적해 보인다. 예전 인터뷰 중 자신이 하회탈처럼 웃는 이유가 얼굴이 슬픔으로 가득한데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더 울적해지지 않겠냐는 내용이 떠올랐다. 

이 거리는 벽화를 보면서 더욱 감정이 이입되게끔 김광석 노래도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노래 가사도 구석구석 쓰여 있다. 평소 노래 가사의 내용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벽화에는 작가들이 그린 그림뿐 아니라 방문객의 낙서 또한 한 벽화에 녹아 있다. 서른 즈음이면 그냥 하는 생각들, 하게 될 생각들, 하고 싶은 생각들, 안 하고 싶은 생각들을 쓰는 벽면과 자물쇠와 군번줄을 채우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펜스. 이것들은 모두 사람 냄새 나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김광석의 이미지와 닮았다.

김광석 인생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하면... 

"7년 뒤에 마흔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마흔 살 되면 오토바이 하나 사고 싶어요. 할리데이비슨.. 멋진 걸루~ 돈도 모아 놨어요... 얘길 했더니 주변에서 상당히 걱정하시대요. ‘다리가 닿겠니?’ 그거 타고 세계 일주하고 싶어요. 괜찮겠지요? 타고 가다가 괜찮은 유럽 아가씨 있으면 뒤에 태우고~, 머리 빡빡 깎고~ 금물 막 이렇게 들여 가지고~, 가죽 바지 입고~ 체인 막 감고... 나이 40세 그러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환갑 때... 저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어요. 로맨스..."

엉뚱하고도 뭔가 이해하기 힘든 것 같지만 김광석이라서 가능한 멋진 꿈인 것 같다. 비록 꿈으로만 끝이 난 이야기이지만 이 벽화 속 오토바이를 탄 김광석은 대신 꿈을 이뤘다.

김광석이 포장마차 주인으로 따뜻한 어묵 국물을 대접하는 벽 앞에 앉아 고민을 털어 놓고 싶어진다. 환하게 웃고 있는, 구수한 사투리를 쓸 것 같은 김광석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것 같다. 대답이 없는 김광석 앞에서 나의 고민도 한번 말해 본다.

김광석 거리는 김광석이 청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 주는 듯하다. 김광석 노랫말에도 먼저 삶을 산 인생 선배로서 청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실려 있다. 끝없는 방황으로 길을 못 찾는 청춘에게는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짝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그저 바라보는 청춘에게는 그 마음이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그리움으로’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또, 더 이상 청춘이라 부를 수도 없는 나이가 된 30대에게는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인생 선배 김광석은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라는 조언해주는 것 같다.

내가 처음 김광석 노래를 들은 중학생 때는 노랫말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진로와 사춘기로 방황했던 시기에 들었던 ‘일어나’. 군 입대를 앞두고 찾지 않아도 주변에서 들려와 절로 눈물을 흘리게 한 ‘이등병의 편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 눈물로 지새우던 밤, 슬픈 마음을 투영해준 ‘사랑이란 이유로’와 ‘사랑했지만’ 등을 들으며 어렸을 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나도 모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30대로 향해가는 나에게 ‘서른즈음’의 노랫말을 한 구절마다 이해해갈 것 같다. 이렇게 여러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김광석 노래를 자신의 상황에 투영해 김광석과 대화하러 이 거리를 찾으면 그는 내가 혼자서 끙끙 앓던 고민들을 풀어주지 않을까? Ahn


두근 두근 나의 2014년 첫 면접, sk 하이닉스 영하이라이터 3기 !!

대전에서 올라가는 거라 버스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선릉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선릉역 1번 출구로 올라갑니다. 오라오면 강남이라 그런지 빌딩들이 엄청 많고, 빌딩 앞에는 남자 분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며, 일의 스트레스를 식히고 있는 모습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거에요 ㅎㅎ


암튼 뒤도 돌아보지말고 계속 직진만 하시면, 하이닉스 서울 사무소 건물이 보일것 입니다.

바로 다음 사진과 같이 말이죠 !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면접장을 안내하는 안내 판이 서 있더군요.


엘리베이터로 14층으로 올라가니 하이닉스 로고가 담긴 벽이 떡하니 있었어요. 아주 상세히 설명중이라 사진이 좀 많습니다.


이제는 출입소에서 카메라를 들고 갈 수 없어 맡기고,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여기서 사진은 끝이 되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면접 대기실로 가게 되었어요. 면접을 마친 조와 대기한 조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일단 저의 이름표를 받고 제가 속한 조를 면접관 분이 알려 주셨죠. 기자 생활을 하셨던 직원분께서 면접을 보고 나온 조원들을 앉혀놓고 두번째 면접을 하듯, 인터뷰를 하더군요. 인터뷰 내용을 옆에서 들었는데, 다들 열정이 넘쳐보였고, 다양한 경험들과 뚜렷한 가치관으로 저를 긴장시키게 했죠. 기자생활을 하셨던 분도 있으셨고, 아버지께서 현재 기자이신 분도 있었고, 현재 쓰고 있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하이닉스가 만든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분 등 다양했어요 정말. 저는 기죽지 않기 위해 조원들과 대화를 통해 긴장도 풀려고 노력했죠.


아! 그리고 조원끼리 처음 면접관분들 앞에서 외칠 구호를 정해야해요. 저두 면접가기 전에 블로그를 통해 팁을 얻어 구호를 준비해 갔어요. 제가 생각한 걸 조원분들이 흔쾌히 허락하셔서 ㅎㅎㅎ 하게 되었는데, 면접장에서는 오히려 제가 긴장한 탓에 제대로 실력발휘가 안되었다네요 ㅠㅠ


암튼 기다리고 기다리던 면접의 시간 !!



네분의 면접관이 앉아 계셨고, 저희조는 마지막 조로, 저 빼고 모두 여성분이셨어요. 조구호도 외치고 앉아마자 오른쪽부터 자기 소개시간을 가졌어요. 지원하게된 이유도 물어보셨고, 영하이라터에 포스팅된 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도 물어보셨고, 자기 소개서에서 말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을 많이 해주셨어요. 나머지 여성 면접자분들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셔서 그 경험에 대한 질문도 많았고, 경력을 주로 많이 물어보셨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저희 조가 모두 블로그를 운영하셔서 블로그 포스팅 빈도와 주로 어떤 내용을 담는지 물어보셨구요. 저는 안랩 기자단을 해서 거기서 가장 자기가 잘썼다고 생각하는 기사를 소개하라고 하셨어요. 또 제가 4학년이고 대전에 있어서 거기에 대한 부분도 질문 해주셨구요. 

그리고 제가 소개할 때, 글쓰기를 좋아하는 공대생, 낭만파 김재현이라고 하면서 취미에 그림그리기, 책읽기 등이 있어가지구 거기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는지 물어 보셨고, 저의 고등학교 꿈과 왜 전자공학과를 가게 되었는지 진실성있게 답했습니다.


면접관 4분 모두 면접자의 얘기를 따뜻하게 들어주셨고, 분위기도 좋아서, 사실 조금 떨렸지만 그래두 진실성있게 답이 나올 수 있는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에서 저희 조원들은 서로 손을 들며 한마디 씩 더 보태었습니다.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내용 또는 영하이라이터의 보완점을 지적해주는 등 다양한 얘기 였습니다.


이렇게 면접은 끝났고, 두근 거리는 심장은 조금씩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었을 쯤, 면접비를 받고 면접에 같이 온 친구와 함께 서울에 온 김에 광장시장의 빈대떡을 먹으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영하이라이터 준비하시는 대학생분들, 아직 저두 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좋을 거 같애요. 면접관 분들의 모습을 보고, 또 면접을 통해 대화를 나눠보니 정말 따뜻한 분들이였습니다. 고민하시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

면접tip>>

팁을 드리자면 자기소개서를 정말 진실되게 쓰고, 음.. 제 생각에는 영하이라이터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기자단을 위해서는 글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꾸미는 능력도 엄청 중요한 것 같더라구요. 또 무엇보다도 영하이라이터에 대한 관심이 제일 중요하겠죠? 

in 청계천 옆 탐앤 탐즈

너무 오랜만에 포스팅이라.. 뭐부터 올려야 될 지 모르겠어가지구...


당장 내일 면접을 보러가게된 sk 하이닉스의 블로그 기자단. 영하이라이터에 대해 포스팅하려 합니다.

모집은 3.16 까지였고, 15일 쯤 넉넉히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남들이 기자단을 왜 하냐고 물어보지만.. 난 기자단이라는 활동이 매우 값지고, 나중에도 기억에 많이 남을 활동이라고 말한다. 나의 자식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권하고 싶은 그런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하이닉스가 sk로 들어가기 전부터 난 아주 귀에 익었던 기업이다. 

엄마가 하이닉스에 주식을 투자를 하고 있던 터라.. 너무 옆길로 샜는데, 새벽 시간이라 잡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ㅎㅎ

지원서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고, 그 이유를 작성해주세요. (사진 첨부 가능, 200자 이내


2. 본인이 young 하이라이터에 지원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200자 이내)


3. YOUNG 하이라이터 3기가 된다면, 첫번째 기사로 어떤 기사를 작성하고 싶으신가요?

아래의 카테고리 중 선정, 기사의 주제와 함께 첫 번째 기사로 선정한 이유를 들려주세요. (카테고리 : SK하이닉스 뉴스 / 리쿠르팅 / 피플 / 반도체 / 트렌드)


3번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하이라이터가 된 입장에서 기사를 써보았다. 하필이면 그 시기에 채용설명회가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었기에, 4학년인 나또한 듣고싶어 카메라를 챙기고 사진도 찍고 필기도 해가며 설명회를 들어, 기사 아이템을 만들어서 썼다.


1,2번 항목에서는 진짜 나에 대해서 표현했고, 열정이 담긴 내용을 쓰면 좋은 것 같다.


결과 3월 19일에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1차 통과했으니 금요일에 서울 사무실에 와서 면접을 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떡하니 내 이름이 올라와있었다.



아참! 같은 과 친구도 같이 지원했는데, 다행히 같이 붙었다. ㅎㅎ 내일 아니 오늘 서울로 면접보러 가는데,


사실 떨리기도하고, 재밌게 하고 오자는 마음가짐으로 잘보고 와야겠다. 올해 첫 면접이 영하이라이터에서 시작되는데, 첫 단추부터 잘 궤어졌으면 좋겠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