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 두근 나의 2014년 첫 면접, sk 하이닉스 영하이라이터 3기 !!

대전에서 올라가는 거라 버스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선릉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선릉역 1번 출구로 올라갑니다. 오라오면 강남이라 그런지 빌딩들이 엄청 많고, 빌딩 앞에는 남자 분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며, 일의 스트레스를 식히고 있는 모습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거에요 ㅎㅎ


암튼 뒤도 돌아보지말고 계속 직진만 하시면, 하이닉스 서울 사무소 건물이 보일것 입니다.

바로 다음 사진과 같이 말이죠 !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면접장을 안내하는 안내 판이 서 있더군요.


엘리베이터로 14층으로 올라가니 하이닉스 로고가 담긴 벽이 떡하니 있었어요. 아주 상세히 설명중이라 사진이 좀 많습니다.


이제는 출입소에서 카메라를 들고 갈 수 없어 맡기고,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여기서 사진은 끝이 되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면접 대기실로 가게 되었어요. 면접을 마친 조와 대기한 조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일단 저의 이름표를 받고 제가 속한 조를 면접관 분이 알려 주셨죠. 기자 생활을 하셨던 직원분께서 면접을 보고 나온 조원들을 앉혀놓고 두번째 면접을 하듯, 인터뷰를 하더군요. 인터뷰 내용을 옆에서 들었는데, 다들 열정이 넘쳐보였고, 다양한 경험들과 뚜렷한 가치관으로 저를 긴장시키게 했죠. 기자생활을 하셨던 분도 있으셨고, 아버지께서 현재 기자이신 분도 있었고, 현재 쓰고 있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하이닉스가 만든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분 등 다양했어요 정말. 저는 기죽지 않기 위해 조원들과 대화를 통해 긴장도 풀려고 노력했죠.


아! 그리고 조원끼리 처음 면접관분들 앞에서 외칠 구호를 정해야해요. 저두 면접가기 전에 블로그를 통해 팁을 얻어 구호를 준비해 갔어요. 제가 생각한 걸 조원분들이 흔쾌히 허락하셔서 ㅎㅎㅎ 하게 되었는데, 면접장에서는 오히려 제가 긴장한 탓에 제대로 실력발휘가 안되었다네요 ㅠㅠ


암튼 기다리고 기다리던 면접의 시간 !!



네분의 면접관이 앉아 계셨고, 저희조는 마지막 조로, 저 빼고 모두 여성분이셨어요. 조구호도 외치고 앉아마자 오른쪽부터 자기 소개시간을 가졌어요. 지원하게된 이유도 물어보셨고, 영하이라터에 포스팅된 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도 물어보셨고, 자기 소개서에서 말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을 많이 해주셨어요. 나머지 여성 면접자분들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셔서 그 경험에 대한 질문도 많았고, 경력을 주로 많이 물어보셨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저희 조가 모두 블로그를 운영하셔서 블로그 포스팅 빈도와 주로 어떤 내용을 담는지 물어보셨구요. 저는 안랩 기자단을 해서 거기서 가장 자기가 잘썼다고 생각하는 기사를 소개하라고 하셨어요. 또 제가 4학년이고 대전에 있어서 거기에 대한 부분도 질문 해주셨구요. 

그리고 제가 소개할 때, 글쓰기를 좋아하는 공대생, 낭만파 김재현이라고 하면서 취미에 그림그리기, 책읽기 등이 있어가지구 거기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는지 물어 보셨고, 저의 고등학교 꿈과 왜 전자공학과를 가게 되었는지 진실성있게 답했습니다.


면접관 4분 모두 면접자의 얘기를 따뜻하게 들어주셨고, 분위기도 좋아서, 사실 조금 떨렸지만 그래두 진실성있게 답이 나올 수 있는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에서 저희 조원들은 서로 손을 들며 한마디 씩 더 보태었습니다.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내용 또는 영하이라이터의 보완점을 지적해주는 등 다양한 얘기 였습니다.


이렇게 면접은 끝났고, 두근 거리는 심장은 조금씩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었을 쯤, 면접비를 받고 면접에 같이 온 친구와 함께 서울에 온 김에 광장시장의 빈대떡을 먹으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영하이라이터 준비하시는 대학생분들, 아직 저두 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좋을 거 같애요. 면접관 분들의 모습을 보고, 또 면접을 통해 대화를 나눠보니 정말 따뜻한 분들이였습니다. 고민하시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

면접tip>>

팁을 드리자면 자기소개서를 정말 진실되게 쓰고, 음.. 제 생각에는 영하이라이터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기자단을 위해서는 글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꾸미는 능력도 엄청 중요한 것 같더라구요. 또 무엇보다도 영하이라이터에 대한 관심이 제일 중요하겠죠? 

in 청계천 옆 탐앤 탐즈

너무 오랜만에 포스팅이라.. 뭐부터 올려야 될 지 모르겠어가지구...


당장 내일 면접을 보러가게된 sk 하이닉스의 블로그 기자단. 영하이라이터에 대해 포스팅하려 합니다.

모집은 3.16 까지였고, 15일 쯤 넉넉히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남들이 기자단을 왜 하냐고 물어보지만.. 난 기자단이라는 활동이 매우 값지고, 나중에도 기억에 많이 남을 활동이라고 말한다. 나의 자식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권하고 싶은 그런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하이닉스가 sk로 들어가기 전부터 난 아주 귀에 익었던 기업이다. 

엄마가 하이닉스에 주식을 투자를 하고 있던 터라.. 너무 옆길로 샜는데, 새벽 시간이라 잡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ㅎㅎ

지원서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고, 그 이유를 작성해주세요. (사진 첨부 가능, 200자 이내


2. 본인이 young 하이라이터에 지원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200자 이내)


3. YOUNG 하이라이터 3기가 된다면, 첫번째 기사로 어떤 기사를 작성하고 싶으신가요?

아래의 카테고리 중 선정, 기사의 주제와 함께 첫 번째 기사로 선정한 이유를 들려주세요. (카테고리 : SK하이닉스 뉴스 / 리쿠르팅 / 피플 / 반도체 / 트렌드)


3번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하이라이터가 된 입장에서 기사를 써보았다. 하필이면 그 시기에 채용설명회가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었기에, 4학년인 나또한 듣고싶어 카메라를 챙기고 사진도 찍고 필기도 해가며 설명회를 들어, 기사 아이템을 만들어서 썼다.


1,2번 항목에서는 진짜 나에 대해서 표현했고, 열정이 담긴 내용을 쓰면 좋은 것 같다.


결과 3월 19일에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1차 통과했으니 금요일에 서울 사무실에 와서 면접을 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떡하니 내 이름이 올라와있었다.



아참! 같은 과 친구도 같이 지원했는데, 다행히 같이 붙었다. ㅎㅎ 내일 아니 오늘 서울로 면접보러 가는데,


사실 떨리기도하고, 재밌게 하고 오자는 마음가짐으로 잘보고 와야겠다. 올해 첫 면접이 영하이라이터에서 시작되는데, 첫 단추부터 잘 궤어졌으면 좋겠다 ^^


유배 가는 고려 국왕


충선왕은 나이 마흔 여섯 되던 해인 1320년에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티베트로 유배를 당했다. 당시 토번 또는 서번이라 불리던 티베트까지는 가는 데만도 무려 반년이나 걸렸다. 한 나라의 국왕이 1만 5000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 가는 심정이 얼마나 처참했을 것인가?


왜 충선왕은 이토록 먼 곳으로 유배를 가야 했을까? 충선왕의 유배지는 어디였고, 유배 생활은 어떠했을까? 고려 후기의 문신 익재 이제현은 티베트까지 직접 가서 충선왕을 만나고 돌아왔다. 

유배지는 티베트 어디였을까?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티베트의 상사결이라는 지역이다. 오늘날의 사캬지역으로 원나라 때 티베트의 종교 정치의 중심지였다.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 바로 13세기에 지어진 800년 역사의 샤카사원이다. 충선왕은 사캬 사원에 머물렀다. 그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2년 반에 달한다. 이후 충선왕은 간쑤성의 도스마 지역으로 옮겼고, 도스마에서 7개월간 머무른 뒤 유배에서 풀려났다. 모두 3년 2개월에 걸친 유배 생활이었다.


원나라 황제의 외손자로 태어나...

왕의 신분으로 유배를 떠난 운명도 기구하지만, 충선왕은 그 출생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충선왕은 칭기스칸의 손자이자 원나라 5대 황제인 세조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충렬왕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의 국왕이 원나라 황제의 외손자가 되는 독특한 혈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몽골은 남송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밀고 밀리는 접전 끝에 몽골 4대 황제인 헌종 몽케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에 몽골 황실은 혼란에 빠졌고, 헌종의 동생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카가 다음 제위를 차지하고자 다투었다. 당시 아리크부카는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에, 쿠빌라이는 전재터에 있었다. 두 세력은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 중 고려 태자 왕전은 쿠빌라이를 택했고, 이는 훗날 고려에 행운을 가져다 준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리크부카는 1264년 7월 쿠빌라이에게 항복했고 2년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황제가 된 쿠빌라이는 고려에 우호적이었으며 강화는 고려에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고려느 원의 직할령으로 복속되지 않고 국명과 풍속을 유지했다.  

 1260년 고려로 돌아온 원종은 11년 뒤 원나라에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고려 태자와 원나라 공주 간에 혼인을 맺자는 것, 원종이 혼인을 제의한 까닭은 원 황실의 지지를 얻기 위함이었다. 고려와 몽골 간의 강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국가를 보전하려 했다.

원종의 아들 충렬왕과 쿠빌라이의 딸 제국공주가 혼인하여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충선왕이다. 


몽골의 침략을 받은 나라는 멸망하고 그 이름도 사라져버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고려만은 원나라와 분명한 국경선을 유지하면서 사실상 독자적인 국가로서 지위를 보장받았다. 여기에는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이라는 점, 즉 그 왕이 원나라 황실의 사위가 되는 나라라는 특수한 관계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충선왕이 왕위를 이어받았을 당시 충렬왕은 나이 예순으로 목숨이 위태롭지도 건강이 나쁘지도 않았다. 갑작스럽게 왕으로 책봉된 충선왕, 그 배경은 무엇일까?


충선왕은 태어난 지 채 2년이 안 된 1277넌 1월 고려의 세자로 책봉되었다. 원나라는 충렬왕을 제쳐두고 그들과 국제관계를 꾸려갈 고려의 파트너로 세자, 미래의 충선왕을 택하였다. 세자는 그런 원나라를 등에 업고 고려에서 최고 실권자가 된 것이다.


충렬왕은 왜 세자에게 갑자기 밀려났을까?

충렬왕은 원나라의 일본 원정을 적극 도왔다. 직접 개경에서 마산까지 내려와 원정을 독려하며 석 달 동안 머물기도 햇다. 충렬왕이 원나라의 일본 원정을 적극 도운 덕분으로 고려는 원나라의 영향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충렬왕은 즉위 초부터 고려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원의 강요에 의해 관제를 변경할 때도 원나라의 관제와 일치하는 것만 개정하고 고려의 독자적인 관제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고려 내정에 간섭하기 위해 파견한 관리 다루가치를 완전히 철수할 것과 군사 기지로 쓰고 있던 탐라를 돌려줄 것, 전쟁 때 잡혀간 고려 백성을 돌려보내 줄 것 등을 요구했다. 원나라 성종은 자칫 자신의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권력을 강화한다면 이로울 게 없다고 판단하여 원나라는 세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충렬왕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충선왕이 왕위에 머무른 기간은 아주 짧았다. 왕위에 오른 채 불과 8개월 만에 폐위 당했다. 충선왕이 폐위 당할 무렵 고려 조정에서는 조비무고 사건으로 불리는 일대 사건이 터졌다. 충선왕의 정실 부인은 원나라 진왕 카말라의 딸 계국대장공주였다. 그러나 충선왕이 사랑한 여인은 고려 여인 조비였다. 그것은 충선왕을 폐위시키기 위한 빌미일뿐이었다. 진짜 이유는 충선왕과 원 황실 간의 힘겨루기에 있었다.

충선왕은 즉위하자마자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내놓았다. 권신이 소유한 광해한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군제와 세제도 정비했다. 더구나 원나라와의 관계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과감히 제거했다. 

충선왕의 새로운 정책 방향도 방향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정책들이 원나라와 사전 협의 없이 채택되어 실행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시되었다. 




글의 끝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있다.

쿠빌라이의 외손자로 태어나 왕위에 두 번 오르고 먼 서번 땅으로 유배되고.... 이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산 군왕이 일찍이 있었던가? 강대한 원나라에 종속되었던 우리 고려의 운명 속에서 상왕이 택할 수 있었던 길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쿠빌라이의 외손이자 고려의 왕이라는 상왕의 태생 자체가 고려가 처한 운명의 축도인 것을, 인걸이 있다한들 시절이 받쳐주지 않으니, 품은 뜻일랑 한 마당 꿈으로 스러질 뿐 !!


지금의 우리 나라 모습과도 유사한 듯 보인다. 미국이라는 강대국과 교류하며 미군이 우리 나라에 주둔하고 있다. 지금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왕들의 압박이라는 것은 조금 사라진 듯하다. 내가 모르는 외교적 압박이 있을 수 는 있지만 말이다. 우리 나라는 항상 미국 대통령선거의 판세에 주목한다. 경제도 주가 소식을 귀기울이고, 

강대국과의 외교는 어떤 식으로 해야 정말 실리적일까? 무조건적? 중립적? 외교문제는 정말 어렵다. 나라 대 나라가 하는 것이라 손실이 어마어마하기에 정말 신중 또 신중해야한다. 고려, 대한 민국... 2014년인 지금 어떤 외교를 펼쳐야 이득도 있고 안정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Hyun 

스터디를 마치고 배고픈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찾기 위해 궁동을 누볐다. 골목 골목 맛집을 찾기 위해...

가본다 가본다 해놓고 아직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향촌 주물럭' 지난 바오밥나무와 비슷한 집밥의 백반집이다. 하지만 이 향촌 주물럭은 바오밥나무와는 다른 인테리어와 분위기. 밑반찬의 종류가 다르다.


약간 옛날 시골의 백반집같은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난 이런 곳이 더 좋다. 뭔가 정감있고, 원래 맛집은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서, 맛으로 승부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

그럼 오늘의 맛집 향촌 주물럭 안으로 들어가보자~

저기 멀리에 희미하게 보이는 차림표에 주물럭 백반과 찌개 백반, 부대찌개, 전골 등이 있지만 여기의 주 메인 메뉴 주물럭 백반을 선택했다. 미세 먼지도 많아 오늘은 기름기 있는 음식 주물럭으로 4인분을 주문했다.

가격대는 5000원에서 6000원 사이이다. 참고로 여기는 밥은 무한 리필이 아니니... 주의해야 한다.

아직 주메뉴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떡볶이, 김치, 고구마 전, 스팸 전, 샐러드, 브로콜리가 나온다. 배가 고파서 메인이 나오기 전에 몇개 집어먹었다. ㅎㅎ

드디어 메인 요리 등장 !!!

주물럭과 김치 찌개 !! 완전 맛있당.. 주물럭과 김치 찌개의 환상의 조화다. 앞으로 나의 맛집 백반집이 또하나 늘게 되었다. 음식 나오기 전 이야기가 많았지만 주 메인이 나오자 다들 말이 없어지고 먹는데 집중하였다. 

밥도둑이라 밥이 금방 줄어들어 2공기를 추가로 시켜 더 먹었다. 우후~ 배불러 !!

완저 말끔히 음식을 비워버렸다. 대학생이면 이정도는 먹어줘야~ 지 ㅎㅎㅎ 배불러서 바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아서 2시간 정도 더 수다를 떨다가 나갔다. 사장님께서는 치우고 싶은 눈치였지만 우리가 계속 얘기를 이어가니 포기하시고 나가셨다. 죄송해요 사장님 너무 배가 불러서 그랬어요 ㅎㅎ  Hyun

작은 고려 강화, 40년 도읍이 되다. 

13세기 초 칭기즈칸이 득세하면서 빠르게 세력을 키운 몽골은 중국 대륙을 시작으로 이슬람, 러시아, 유럽 대륙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대제국이 되었다. 이러한 몽골에 의해 무인정권의 우두머리 최우는 끝까지 개경을 지킬 것을 주장한 김세충 등을 참하고 왕을 위협하여 강화 천도를 강행했다. 이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고려의 수도는 개경에서 강화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묻는다.

몽골에 대한 항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인정권이 결행한 강화 천도, 대몽 항쟁이 비록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인 국난 극복의 사례로 거론 되지만, 진정 결사항전을 위한 천도몽였을까?

강화도로 수도로 택한 까닭은 무었일까?

한반도의 중심인 경기만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강화도는 모든 물류망이 모이는 지리적 요충지인 데다 수도 개경으로 가는 입구였다. 더욱이 바다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했다. 


수로가 좁아 밀물에서 썰물로 바뀔 때 짧은 시간에 유속이 급격히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최고 9미터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다. 우회하면 갯벌이 있어 몽골군의 최대 강점인 기동성을 발휘할 수 없다.

몽골은 왜 강화도를 침공하지 않았나? 

고려는 몽골의 주 전선이 아니었고, 그래서 완벽하게 통제할 필요도 없었다. 몽골군이 강화도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수전에 약해서가 아니었다. 몽골은 강화도 침공을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 관계와 자신들의 패권 전략이라는 큰 틀 속에서 판단했기에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화도로 천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려는 몽골이정복한 세계 수많은 나라 중 유일하게 국체를 유지했다. 다시 말해 왕이 몽골군에 무릎을 꿇지 않고 정권을 유지했다는 얘기다. 만약 천도하지 않았더라면 고려도 멸망했을 것이다. 몽골군은 다양한 첨단 무기를 갖추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어 전 세계인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항복이 아니면 죽음.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인정권은 강화 천도를 선택했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금을 협박하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강화 천도를 강행한 무인정권의 전략은 무엇일까?


강화도로 들어간 고려 집권층은 예전과 다름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고 조세도 그대로 받았다. 당시의 세금 수탈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많은 고려 백성들은 몽골군이 오는 것을 반길 정도였다. 무인 정권은 백성들을 지켜주기는 커녕 전쟁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강화 천도의 목적이 정권유지가 아닌 몽골에 대한 결사항전이었다면, 본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옳다. 강화도의 군사력으로 본토를 지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면, 적어도 세금을 줄여주는 등의 조치를 통해 백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무인정권은 고통 받는 백성들을 외면한 채 은둔해 세월만 보냈다.


이 글을 읽자, 정말 슬펐다. 힘없고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던 백성들... 지금으로 하자면 국민들일텐데...

자신의 생명과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강화에서 숨어 도와주지도 않고... 이게 진정 같은 나라의 사람인가? 이 나라의 지도자란 말인가?... 정말 말도 안되는 것 같다. 사실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지 궁금해진다. 있어서도 안되지만, 나라 전체가 힘들어 질 때, 과연 지도층이 국민들을 위해 희생을 할 지. 고려 무인 정권처럼 숨어서 자신들만 잘먹고 잘살지. 희생을 뒷받침한 리더십을 발휘할 지도자가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언제고 도와주러 오겠지. 믿고 있던 고려 백성들이 불쌍하고, 안타깝다. 그 때는 스마트 폰도 텔레비전도 없으니 소식을 접하기도 늦고, 영문도 모른체 죽어갔을 테니... 


수십 년 계속된 전쟁으로 지친 고려 백성들은 무인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사실상 방치되어 고군분투하던 백성들이 항복하기 시작하면서 항몽전선이 급격히 무너졌다 1258년, 전쟁을 고집하던 무인정권의 수장 최의가 암상당했다. 최충헌이 집권한 이후 60년간 이어지던 최씨 정권이 무너지고 몽골에 항복할 것을 요구하는 주장이 힘을 얻어 강화 천도가 이뤄진지 29년 만에 고려 왕실은 몽골과의 강화를 결정햇다. 

1259년 쿠빌라이를 직접 만나 강화를 성립시킨 사람은 태자 왕전이었다. 왕전은 몽골의 군사력을 끌어들여 강화도에 남아 있던 무인정권을 무너뜨렸다. 38년에 이르는 강화도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책에서 강화 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강화 천도는 몽골이라는 막강한 적 앞에서 최씨 무인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몽골군의 끈질긴 침략 앞에서도 고려가 멸망하지 않은 것이 천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방치된 체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했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화 천도는 배신이자 도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Hyun

[출처] _ HD 역사스페셜 5 중에서...

1. 강화 천도, 작전인가 도피인가?


2. 충선왕,국왕의 몸으로 유배되다. 


3. 700년 전 고려인, 이슬람 성지에 잠들다.


4. 회화 예술의 극치, 고려 불화


5. 고려 시대의 타임 캡슐, 청자 운반선


6.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대주의 역사서인가?


7. 목화씨 한 톨, 세상을 바꾸다.


8. 고려의 네오 테크놀러지, 화약과 화포


9. 조선의 수도, 한성은 어떻게 건설됐나?


10. 세종, 조선을 업그레이드하다.


11. 사형수는 왕에게 보고하라, <경국 대전>



다음의 목차로 이 책은 시작을 한다. 크게 봐도 고려와 조선의 큰 사건들을 다룬 것 같다. 

처음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고 느꼈던 것은 최근에 수업들었던 공학도를 위한 세계문화 시간이었다. 

중국 문화에 대해 배울 때 쯤, 교수님께서 중국 문화를 배우기 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우리 나라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프로젝트 '동북 공정'에 대해 설명 해주셨다. 익히 들었지만, 그 소식을 들을 당시에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아마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참담한 내용을 직접 들으니, 역사의 중요성과 역사가 없으면 나 또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업을 듣는 수강생 중 중국학생들도 있었지만, 교수님께서는 양해를 구하면서도 강력히 말하셨다. 중국이 자신의 역사로 만드는 과정을 낱낱히.

나를 비롯해 교실의 학생들은 정말 화가 났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 화남이 곧 부끄러움으로 바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이렇게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군에 있을 때도 일기를 거의 꼬박 꼬박 썼었다. 글과 사진 모두 과거의 추억을 남기는 기록물이었다. 이렇게 나는 기록물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나는 이렇게 엮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좀 더 친숙하게 알고 싶어 직접 도서관에 가서 나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책을 고르다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한 사건을 통해 역사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이슈화되는 부분을 명쾌하게 정리해주면서 요목 조목 이유도 뚜렷하여 이해하기 쉽고,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이 새벽에 글을 남기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시점에서 빨리 기록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납일도 얼마 남지 않았고...


다음 페이지 부터 책과 관련되어 내생각과 더불어 내용을 정리해보려한다. Hyun

 

이규혁 마지막 소감이 트위터에 올라와 화제다. 


이규혁은 지난 12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아레나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1000m 경기에서 1분10초04를 기록해 21위를 차지했다. 이날 경기는 이규혁의 592번째이자 선수 생활 마지막 레이스였다. 

 16년 동안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선수였던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을 ‘은퇴’로 변경했다. 

 이규혁은 트위터에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시지 하나하나 잘 읽고 감동합니다. 제가 선택한 스피드 스케이팅. 많은 시간 절 힘들게 했지만, 그것보다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전 오늘 행복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마지막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규혁은 지난 1991년 13세의 나이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총 6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을 딴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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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마지막 소감' '올림픽은 핑계였을 뿐'

이규혁은 1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10초04의 기록으로 아쉽게도 21위에 그쳤습니다. 

이규혁은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전 감독이자 SBS 해설위원 김관규(빙상경기연맹 전무)를 만난 자리에서 "시원섭섭하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보다"라고 말한 뒤 "오늘 경기에서 과거 전성기의 속도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최고 속도가 나는 순간 감이 왔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오랜 시간 도전을 이어오면서 올림픽은 나에게 선수로서 활동하기 위한 핑계였던 것 같다" "메달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계속 출전했지만, 사실 선수 생활을 계속 하고 싶어 올림픽에 나왔다. 선수로서 행복했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전했습니다. 

1991년 열세 살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이규혁은 16세 때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이후 6번의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이는 동계와 하계를 통틀어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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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m 경기가 끝나고 가진 인터뷰에서 "마지막인 만큼 즐기려고 했다.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의미보다 선수로 맞는 마지막 레이스라는 점이 더 와 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레이스는 600m까지 좋았다. 하지만 경기를 하면서 느낄 정도로 체력이 부족했다. 예전 같았으면 메달권을 노릴 수도 있는 페이스였는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규혁은 "올림픽 메달이 없어 부족한 선수로 빙상을 떠나는 거 같다"면서도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올림픽으로 많이 배웠고 선수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올림픽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선수로 남겠지만 그 부분을 채우면서 살아가겠다"면서 "이 순간 선수로 서 있는 것이 가장 기쁘고 이제 선수로 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고 감동적인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위는 이규혁 선수 관련된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기사입니다.  정말 인터뷰 내용이 감동적이고 잊고 싶지 않아 제 블로그에 한번 옮겨 보았습니다. 



세계 신기록은 있었지만 올림픽에서 메달이 없었다. 하지만 4년의 시간을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며 올림픽을 위해 몸을 만들고 끊임없이 훈련해왔다. 그렇게 끊임없이...나도 지금 취업준비생이지만 취업이라는 관문 앞에서 이렇게 긴긴 시간동안 준비해왔나 그런 기분이 드는데, 이규혁 선수는 긴긴 시간동안 올림픽을 위해 무려 6연속이니깐 24년을 빙판 위에서 끊임없이 달리고 또 달린것이다. 이규혁 선수 앞에서 난 너무 부끄러워 지는 순간이다. 다시 나도 다짐을 하고, 새롭게 나의 미래를 위해 힘차게 달려야겠다.


이규혁선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의 도전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남은 인생은 차가운 빙판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 대표 라는 직함이 아닌 **** 이규혁으로 만날 수 있겠죠? ^^ 그 날까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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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과 애들이랑 점심을 배불리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 나섰다. 경식이가 최근에 다녀왔다던 바오밥나무 라는 밥집. 나도 친구들에게 종종 들었지만 아직 직접 가보지는 않아 궁금하여 고민하지 않고 바로 바오밥 나무로 갔다. 

정문에는 이렇게 알바를 구한다는 알림말과 함께, 대학로 도로명 간판이 붙어져 있다. 누가봐도 대학가에 위치한 밥집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정문을 찍지 못했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정말 카페와 같아, 설마 설마한 느낌이 들었다.

기대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음식점이라기 보다는 밥집이라기 보다는 카페같은 인테리어에..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눈에 띤다. 특히 파스텔 톤과 하늘색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인테리어는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나도 나중에 나이 들면 이런 인테리어를 한 카페나 밥집을 차리고 싶었다. 

여자들끼리나 커플끼리 올 것 같은 이런 인테리어에 공대생 남자 세명이서 점심을, 그것도 배불리 먹기 위해 이곳에 왔다. ㅎㅎ 우리 외에도 많은 남남 그룹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기에 부끄럼은 없었다. ^^

테이블마다 잡지가 있어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하다 보니 기다림이 지루하지는 않지만... 이 날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조금 기다리기는 힘들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가 벽지에 그려져있다.

곳곳에 잡지들이 있고, 위와 같은 메뉴판이 사진첩에 끼워져있다. 

메뉴는 대부분 백반집 같은 찌개류와 비빔밥, 돈까스가 주를 이룬다.

가격은 5000원 대에서 7000원대까지 있고, 밑반찬은 음식이 사라지면 이모가 채워주신다. 그리고 밥은 내가 배가 찰때까지 원하는 대로 퍼서 먹을 수 있다. !

배고픈 대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제육 덮밥 앤드 밑반찬. 나는 여기서 감자 튀김과 전을 주로 공략했다 ~*

오늘 내가 점심으로 택한 것은 순두부 찌개. 이모의 마음이 담긴 저 밥. ㅎㅎ 높이 쌓아 주셨다. 하지만 나는 꿀떡 먹어버리고 한그릇더 비워버렸다 ㅎㅎ 


저녁때까지 공복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먹고 오늘은 저녁에 운동을 했다.  파워워킹 30분 뜀박질 20분 ~

배고픔을 단돈 5000원으로 이겨내고 싶을 때, 데이트 비용이 가끔 떨어질 때, 남자들끼리도 부담없이 올 수 있는 바오밥나부 백반집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정말 친절하신 사장님께서 항상 웃으시며 반겨주시고 밑반찬도 계속 리필 해주신다.   Hyun

 서울 우유 행복 스토리 콘테스트(1월1일~131)

 

안녕하세요
 서울우유 2차 행복 스토리 콘테스트 소식을 맘스중고 식구들과 공유하려고 해요!

 행복 스토리 콘테스트는 서울우유에 관련된 행복한 사연이나 즐거웠던 사연,

특별한 사연을 150자 내외로 작성하여 참여하시면 됩니다.





(이벤트) '서울우유행복스토리 콘테스트 특별한 선물이벤트

서울우유와 함께한 행복한 이야기를 올리고

다양한 특별한 혜택과 선물 받아가세요^^

 

이벤트) '서울우유행복스토리 콘테스트

서울우유와 함께한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참여하신분 중 우수사연을 선정하여 감사의 선물과 함께, 우유 팩에 사연을 올려드립니다.

이벤트기간:  1차 - 2013.11.28 ~ 2013.12.31  / 2차 - 2014.01.01 ~ 2014.01.31

당첨자발표:  1차 2014.01.10 / 2차 2014.02.10

이벤트상품:  최우수작 30만원 상금 / 우유팩에 당선글

                    매월 우수작 50명선정 5만원상당 치즈선물 세트 증정

                    매월 참가상 1000명선정 흰우유 1리터 기프티콘 증정

 

이벤트2) 12월 우수작에게는 더욱 특별한 선물

철원의 맑은 물과 기름진 땅에서 정성스럽게 키워낸 무농약 철원쌀 10Kg을

콘테스트 참여해주신 분 중 추첨을 통해 50분께 선물로 드립니다^^

이벤트선물:  무농약 철원쌀 10Kg (추첨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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