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려 강화, 40년 도읍이 되다. 

13세기 초 칭기즈칸이 득세하면서 빠르게 세력을 키운 몽골은 중국 대륙을 시작으로 이슬람, 러시아, 유럽 대륙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대제국이 되었다. 이러한 몽골에 의해 무인정권의 우두머리 최우는 끝까지 개경을 지킬 것을 주장한 김세충 등을 참하고 왕을 위협하여 강화 천도를 강행했다. 이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고려의 수도는 개경에서 강화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묻는다.

몽골에 대한 항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인정권이 결행한 강화 천도, 대몽 항쟁이 비록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인 국난 극복의 사례로 거론 되지만, 진정 결사항전을 위한 천도몽였을까?

강화도로 수도로 택한 까닭은 무었일까?

한반도의 중심인 경기만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강화도는 모든 물류망이 모이는 지리적 요충지인 데다 수도 개경으로 가는 입구였다. 더욱이 바다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했다. 


수로가 좁아 밀물에서 썰물로 바뀔 때 짧은 시간에 유속이 급격히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최고 9미터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다. 우회하면 갯벌이 있어 몽골군의 최대 강점인 기동성을 발휘할 수 없다.

몽골은 왜 강화도를 침공하지 않았나? 

고려는 몽골의 주 전선이 아니었고, 그래서 완벽하게 통제할 필요도 없었다. 몽골군이 강화도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수전에 약해서가 아니었다. 몽골은 강화도 침공을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 관계와 자신들의 패권 전략이라는 큰 틀 속에서 판단했기에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화도로 천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려는 몽골이정복한 세계 수많은 나라 중 유일하게 국체를 유지했다. 다시 말해 왕이 몽골군에 무릎을 꿇지 않고 정권을 유지했다는 얘기다. 만약 천도하지 않았더라면 고려도 멸망했을 것이다. 몽골군은 다양한 첨단 무기를 갖추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어 전 세계인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항복이 아니면 죽음.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인정권은 강화 천도를 선택했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금을 협박하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강화 천도를 강행한 무인정권의 전략은 무엇일까?


강화도로 들어간 고려 집권층은 예전과 다름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고 조세도 그대로 받았다. 당시의 세금 수탈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많은 고려 백성들은 몽골군이 오는 것을 반길 정도였다. 무인 정권은 백성들을 지켜주기는 커녕 전쟁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강화 천도의 목적이 정권유지가 아닌 몽골에 대한 결사항전이었다면, 본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옳다. 강화도의 군사력으로 본토를 지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면, 적어도 세금을 줄여주는 등의 조치를 통해 백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무인정권은 고통 받는 백성들을 외면한 채 은둔해 세월만 보냈다.


이 글을 읽자, 정말 슬펐다. 힘없고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던 백성들... 지금으로 하자면 국민들일텐데...

자신의 생명과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강화에서 숨어 도와주지도 않고... 이게 진정 같은 나라의 사람인가? 이 나라의 지도자란 말인가?... 정말 말도 안되는 것 같다. 사실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지 궁금해진다. 있어서도 안되지만, 나라 전체가 힘들어 질 때, 과연 지도층이 국민들을 위해 희생을 할 지. 고려 무인 정권처럼 숨어서 자신들만 잘먹고 잘살지. 희생을 뒷받침한 리더십을 발휘할 지도자가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언제고 도와주러 오겠지. 믿고 있던 고려 백성들이 불쌍하고, 안타깝다. 그 때는 스마트 폰도 텔레비전도 없으니 소식을 접하기도 늦고, 영문도 모른체 죽어갔을 테니... 


수십 년 계속된 전쟁으로 지친 고려 백성들은 무인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사실상 방치되어 고군분투하던 백성들이 항복하기 시작하면서 항몽전선이 급격히 무너졌다 1258년, 전쟁을 고집하던 무인정권의 수장 최의가 암상당했다. 최충헌이 집권한 이후 60년간 이어지던 최씨 정권이 무너지고 몽골에 항복할 것을 요구하는 주장이 힘을 얻어 강화 천도가 이뤄진지 29년 만에 고려 왕실은 몽골과의 강화를 결정햇다. 

1259년 쿠빌라이를 직접 만나 강화를 성립시킨 사람은 태자 왕전이었다. 왕전은 몽골의 군사력을 끌어들여 강화도에 남아 있던 무인정권을 무너뜨렸다. 38년에 이르는 강화도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책에서 강화 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강화 천도는 몽골이라는 막강한 적 앞에서 최씨 무인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몽골군의 끈질긴 침략 앞에서도 고려가 멸망하지 않은 것이 천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방치된 체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했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화 천도는 배신이자 도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Hyun

[출처] _ HD 역사스페셜 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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